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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전야 結婚前夜 」

 

「 결혼전야 結婚前夜 」

W. 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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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오직, 결혼하는 연인에게만 허락된 영원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내일은 아르도어와 옌의 결혼식입니다. 그러나 결혼 전의 연인이 종종 그렇듯, 두 사람은 사소한 계기로 크게 싸워버렸습니다. 이렇게 싸우고 엉망진창인 결혼식을 치를 순 없으니⋯ 역시 옌을 달래주러 가야겠죠. 가뜩이나 기분도 안 좋은데 문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네요. 아르도어가 한숨을 내쉬고 자동차 키를 챙기던 그때, 초인종이 울립니다.

⋯알, 나야. 오전엔⋯ 내가 미안했어. ⋯혹시 지금 들어가도 돼?

옌입니다. 인터폰 화면 너머의 그 얼굴이 유독 낯설게 느껴집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어쩐지⋯ 오늘따라 묘하게 성숙한 느낌입니다. 아르도어가 문을 열어주면 옌이 젖은 우산을 털며 들어옵니다. 서늘한 빗물에 얇은 셔츠가 달라붙어 살갗이 비칩니다.

오늘은 결혼 전야.
밤늦도록 그치지 않을 비가 창문을 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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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아르도어와 옌의 결혼식입니다.
 
윤슬이 아름다운 바다가 잘 보이는 이곳에 머물며 몇 주를 공들여 준비했던 당신의 결혼식이죠.
 
그러나 결혼 전의 연인이 종종 그렇듯, 두 사람은 사소한 계기로 크게 싸워버렸습니다.
 
싸웠다기보다는 늘 그랬듯 옌이 일방적으로 심술부린 것이지만요.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싸우고 엉망진창인 채로 결혼식을 치를 순 없으니……
 
역시 옌을 달래주러 가야겠죠.
 
가뜩이나 기분도 안 좋은데 문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네요.
 
아르도어:⋯비가 오니 날 수도 없을 텐데.
 
옌이 머물고 있는 신랑 숙소는 여기서 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였었죠.
 
아르도어가 한숨을 내쉬고 자동차 키를 챙기던 그때, 초인종이 울립니다.
 
나가보나요, 아르도어?
 
아르도어:⋯옌? (올 사람이라면 이외에 없다. 나가보자.)
 
아르도어는 현관 근처에 있는 인터폰 앞에 멈춰 섭니다.
 
예상했던 인물이 서있네요.
 
리우 옌:...알, 나야. 오전엔… 내가 미안했어.
…혹시 지금 들어가도 돼?
 
아르도어:응. ⋯바로 열게. (그리 말한 후 곧바로 문을 열어준다. 현관으로 나가보자.)
 
아르도어가 문을 열어주면 옌이 젖은 우산을 털며 들어옵니다.
 
그 얼굴이 유독 낯설게 느껴지는건 기분 탓일까요.
 
뭐라고 해야 할까, 어쩐지…… 오늘따라 묘하게 성숙한 느낌입니다.
 
서늘한 빗물에 얇은 셔츠가 달라붙어 살갗이 비칩니다.
 
아르도어:⋯옌? 역시 비를 맞았나. (평소와 느낌이 다르다. 잠깐 흠칫했으나 이내 갈무리하고 몸을 반쯤 비켜선다.) 들어와. 수건 준비할게.
 
리우 옌:... 응, 고마워. 비가 많이 오더라고. (머리를 툭툭 털며 말을 잇는다. 우산을 벽 한켠에 기울여 놓고선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말 없이 발 들였다.)
 
아르도어:(안쪽에서 잘 마른 수건 몇 장을 챙겨 나왔다. 그 손에 들려주며 말 잇기를.) 오늘 일 때문이라면 더 이상 신경 쓰지 마라. 나도 마침⋯ 찾아가려고 했었어.
⋯네 기분이 상한 건 다 내 탓이니까 미안해하지도 말고.
 
리우 옌:... 어떻게 그래, 내가 잘못한건데. 나야말로 사과하러 온거니까... 아까는 화내서 미안해.
(수건 받아들어 눅눅하게 젖은 어깨 위 머리카락 걷어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 생각이 짧았어. 역시 부케는 네 말대로 하얀 장미가 좋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더라고.
용서해줘...
내일은 결혼식이잖아.
 
…우리가 아까 그런 걸로 싸웠던가요?
 
아르도어는 잠깐 의아해집니다만, 옌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태연하게 아르도어의 숙소 안으로 들어옵니다.
 
오늘은 결혼 전야.
 
밤늦도록 그치지 않을 비가 창문을 때립니다.
 
바깥은 여전히 비바람이 몰아칩니다.
 
시계는 거의 자정을 가리키고 있고, 아르도어의 숙소에 있는 건 단 둘뿐입니다.
 
평소와 같은 일상인가 싶으면서도, 약혼한 두 사람이 야심한 밤에 만난다는 것은 역시……
 
그런 묘한 생각에 빠져있을 때, 앞서가던 옌이 갑작스레 멈춰 섭니다.
 
그와 동시에 옌은 아르도어의 손목을 잡아끌어 그 손등에 조심스럽게 입 맞춥니다.
 
리우 옌:...헤헤, 그냥... 갑자기 하고 싶었어. 잠깐도 네 얼굴을 보지 않고선 견디기가 힘든가봐.
 
아르도어:(부케 문제로 말다툼을 했던가. 의아함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 생각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제 손에 닿는 살결의 감촉이 부드러운 탓이었는지.)
⋯바보.
 
리우 옌:... 너에 관한 것이라면 바보여도 난 좋아.
네가 그렇게 평생 불러준다면... 그냥 바보할래. (네 수벽에 온기 머금은 뺨 부볐다.)
 
아르도어:(이내 손바닥으로 얼굴 감싸 쥐고선 고개 가까이한다. 가볍게 뺨 위로 입술을 누르고서.)
⋯자고 가. 어차피 내일 같이 나가야 하니까.
 
리우 옌:... 오늘은 결혼 전 날이기도 하고, ......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온건데.
...역시 알은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 곁에 있어줘.
 
그 말을 끝으로 완전한 정적, 묘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를 감돕니다.
 
고요한 빗소리를 듣다 보면, 옌의 목덜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고정됩니다.
 
여기저기 맺힌 물방울이 살결의 선을 타고 매끄럽게 흘러내려 갑니다.
 
살짝 비치는 어깨와 등에도 눈길이 가는군요.
 
비 때문일까요, 평소의 옌과 뭔가 다릅니다.
 
조금 더……
 
...
 
그런 시선을 눈치챈 듯 옌은 다시 입을 뗍니다.
 
아르도어:⋯.
 
리우 옌:… 알, 욕실 좀 빌려도 돼?
 
아르도어:⋯ ⋯응. 이쪽이야. (욕실이 있는 방향을 가리킨다.) 옷은⋯ 내가 입으려던 게 있긴 해.
 
리우 옌:... 그럼 넌 뭘 입게? 됐어, 내가 어떻게든 하지 뭐.
금방 씻고 나올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아르도어:⋯알겠다. 따뜻한 차라도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있을게.
 
옌이 욕실 문을 닫고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물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르도어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옌은 추위를 많이 타잖아요.
 
결혼식 전에 감기라도 걸리면 곤란할 테니 따뜻한 차라도 한 잔 준비해주자고요.
 
거센 빗소리와 욕실의 물소리, 그리고 차를 끓이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실내를 채웁니다.
 
투명하고 서늘한 소리는 아까의 옌을 떠올리게 합니다.
 
분명 평소와는 다른, 묘한 분위기였죠.
 
그 냉기를 품은 말캉한 입술을 생각하니 어쩐지 목이 탑니다.
 
그런 느낌은…….
 
뚝, 아르도어의 생각을 끊는 벨 소리가 들려옵니다…….
 
잠시 놀랐으나, 옌의 핸드폰입니다.
 
아르도어:알람인가? (평소엔 욕실 앞에 두는데. 그런 생각으로 휴대폰을 확인한다.)
 
그냥 두면 저절로 끊길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울리는군요.
 
옌의 가방에서 핸드폰을 찾아볼까요?
 
아르도어:(그래도 옌의 사생활이 있으니 잠깐 고민함⋯.)
 
안보나요?
 
아르도어:⋯급한 연락이라면 전해줘야 할 수도 있으니까. (확인하자.)
 
아르도어는 옌의 가방을 엽니다.
 
사생활이 있을 순 있겠지만, 뭐 우리가 내외하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겠죠?
 
아르도어:응. (자기 휴대폰은 옌이 마음대로 봐도 됨)
 
가방은 가볍습니다.
 
아르도어는 작은 액자, 상자, 다이어리, 핸드폰을 발견합니다.
 
아르도어:(목적이 먼저. 휴대폰을 확인한다.)
 
아르도어가 휴대폰을 확인하려 하자, 시간이 좀 지났는지 금세 뚝 멈춰 버립니다.
 
뭐, 급한 용건이라면 다시 연락이 오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분명 얼마 전에 새로 맞췄다고 했는데, 그새 떨어뜨렸는지 화면에 긴 금이 있습니다.
 
임무 나갈 때는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일러줬는데 말이에요.
 
아르도어:(그새 다시 떨어트렸나? 옌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깐.)
누구에게 온 연락이었지? (확인해 볼 수 있을까?)
 
핸드폰은 잠금이 걸려 있습니다.
 
열어볼 수 있을까요...
 
 
아르도어:
(휴대폰은 다시 원래 위치로 돌려둔다. 그러면서 눈에 띈 것은 작은 액자다.) 이건⋯.
 
아르도어가 고개를 돌리자, 액자 속 사람들과 눈이 마주칩니다.
 
아르도어와 옌입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새하얀 액자 안에는 두 사람이 예전에 함께 찍은 사진이 담겨 있군요.
 
함께 지내게된지 일이 년이 되어가던 무렵, 옌과 갔던 놀이공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터지는 불꽃들을 등진 채, 대관람차 앞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이 보입니다.
 
아르도어:이건⋯ 옌이랑 처음으로 나들이를 간 날이군. (물끄러미 사진 속 옌을 바라본다.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레 얼굴 부근을 쓸어보고.) ⋯이때부터였던 걸지도 모르겠어.
 
아마 그때부터였던가요, 옌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날이.
 
단순히 지켜야하는 상대가 아니라, 함께 하고픈 동반자가 되었던 순간은......
 
아르도어:⋯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했지. (처음으로 그런 욕심이 생긴 상대. 같은 대답을 돌려받았을 때는, 순수하게 기쁨으로 차올랐었다. 그런 행복한 기억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순간을 간직해온 건 나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액자를 제자리에 둔 후, 상자 위로 손을 둔다. 열어봐도 될까⋯. 혹시 이런 추억이 담긴 물건이 아닐까 싶어 혹했던 것 같다.)
(상자를 열어본다.)
 
아르도어의 눈 색과 꼭 닮은, 청자색 리본으로 묶여있습니다.
 
얇고 섬세해, 자국이 잘 남는 재질이라 묶인 리본을 푼다면 아르도어가 가방을 뒤졌다는 것을 옌이 알아차릴 것 같습니다.
 
화해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싸울 생각을 하면 골치 아프지 않나요?
 
간신히 화가 풀린 것 같은데, 옌이 또 그냥 화난 채 돌아가버린다면...
 
아르도어:⋯그만두자. (모양새를 보아, 지금은 이 상자의 존재를 알아선 안 될 것 같다. 아마도.)
 
 
아르도어:(다이어리 힐끔 봄)
 
옌의 다이어리입니다.
 
아르도어:(힐끔⋯.)
 
여기에 평소 일정을 적어둔다고 했죠.
 
근데 이것도 좀...
 
오늘 따라 되는 일이 없네요.
 
알은 왜 뒤지라고 하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방 안을 더 살펴보나요?
(가방을 닫고 일어선다. 차나 마저 준비할까.)
 
아르도어가 마음을 접고 일어서려던 쯤에...
 
또 다시 벨소리가 울립니다.
 
정말 급한 용건인가본데요.
 
아르도어:⋯.
(고민은 짧았다. 가방 속 휴대폰을 다시 꺼내 확인한다.)
 
아르도어는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폰을 다시 확인합니다.
 
요란맞은 그 소리는 ...
 
전화가 아니라 알람이네요.
 
자정이 훌쩍 넘어가는 시간에, 왜 알람을?
 
아르도어:(⋯무슨 알람이지? 내용이 적혀있는지 화면을 들여다본다.)
 
그때, 뒤에서부터 손이 쑥 뻗어져 나옵니다.
 
리우 옌:... 봤어?
 
으스스한,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말투.
 
아르도어:아.
 
그렇게 말한 옌은 아르도어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잡아채더니, 가방 안으로 던져 넣습니다.
 
방금 샤워를 끝낸 듯 스치는 살결엔 온기가 채 빠지지 않았네요.
 
아르도어가 뭐라 변명하기도 전에 옌은 그 뜨끈하고 발그스레한 뺨을 아르도어의 목덜미에 대곤 가볍게 입맞춥니다.
 
리우 옌:...남의 걸 이렇게 함부로 뒤적거리면 어떡해?
우리의 아르-도어가 이렇게 음침하셨던가?
 
아르도어:⋯소리가 울려서 잠깐 확인했다. 이 시간에 웬 알람이지? (목덜미를 타고 올라오는 선연한 감각에 살짝 움찔한다.)
 
리우 옌:... (쪽, 쪽, 쪽... 선명하게 입소리 퍼진다. 한참을 뒤에서 끌어안은채 목덜미 인근에 입맞추다, 낮은 목소리로 입 열었다.)
별 거 아니야. 그냥 알람. AM이랑 PM을 착각했나 봐. (목덜미 살짝 깨물었다. 고의인듯, 실수인듯.)
 
아르도어:⋯그런가. (손으로 그 뒷머리를 감싸곤 숨을 길게 내쉰다. 달뜬 것 같기도, 한숨 같기도 하다.)
옌. 오늘따라⋯ ⋯접촉이 많은데. (싫은 기색은 결코 아니었지만.) ⋯바로 내일이 식이다.
 
리우 옌:... 응, 알아. (어깨 뒷쪽에 고개 파묻곤, 뺨 살며시 부빈다.)
...뭐가 문제야? 바로 내일이 식인데.
 
히죽대는 옌의 목소리 톤은 장난스럽습니다.
 
다행히 아르도어가 마음대로 옌의 짐을 뒤져서 화가 난 건 아닌 것 같네요.
 
옌은 그렇게 한참 아르도어의 목덜미에 입을 지분거리다 물러섭니다.
 
밀착된 상태라 몰랐는데, 옌은 샤워 가운 한 장만 입고 나와 있습니다.
 
여태 그런 상태로 닿아있었다니…… 어째 목덜미 부근이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습니다.
 
알이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에 익지 않은 것이 보입니다.
 
우측 쇄골 아래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그믐달 모양의 문신.
 
옌에게 원래 저런 것이 있던가요?
 
아르도어:⋯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야. (귓가가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으나,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해 눌러낸다. 미간을 꾹 누르고 눈을 돌리는데, 보이는 것은⋯.)
옌. 잠깐. ⋯그 문신은 뭐지?
 
리우 옌:일찍 못 일어날 것도 없지, 우리 며칠 밤도 꼴딱 새어 봤잖아. (반쯤은 진심이고, 또 반쯤은 농담인듯... 설렁설렁 대답하다가 그 물음에 고개 잠시 기울였다.)
아, 이거? 얼마 전에 새긴거야. 그냥 부대 내에 아는 사람이 혼자 문신 새기러 가기 무섭다고 나도 끌고 갔거든. 튀는 건 싫어서 작게 했는데...
... ... 어때, 예뻐? (히죽,)
 
아르도어:⋯ ⋯왜 그걸 이제서 말해.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답변. 제가 모르는 새, 피부에 새긴 문양을 뚫어질 듯이 바라본다.)
네가 하는 건 다 좋다.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기면 바로 말해.
 
리우 옌:... 왜? 마음에 안들어? 아니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히죽히죽, 얄밉게 웃으며 가운으로 그 위를 슬며시 가렸다. 너무 뚫어져라 바라보는거 아냐? 저질스럽게 덧붙이면서.)
아서라, 걱정도 팔자야. 이정도로 뭐가 문제라고. 나도 한 번 쯤 해보고 싶었던 거니까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으- 음, 그나저나. 옷이 젖어 있어서 마를 때까진 이렇게 입고 있어야겠는데......
그동안 뭐 할래?
 
아르도어:⋯ ⋯네 몸에 내가 모르는 변화가 있는 건 싫어. (솔직한 대답. 언제나 그랬듯.)
 
리우 옌:...작은 걸로도 심술이셔. 우리 부인, 은.
 
아르도어:(가운으로 문신을 가리는 동안에도 시선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있다. 이내 한숨과 함께 납득한 듯하지만⋯.)
(움찔.) ⋯ ⋯ ⋯그 호칭은 아직 이르잖아.
 
리우 옌:응? 뭐가.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우린 부부인데?
결혼반지 낀 순간부터 부인 아니셨던가? (큭큭.)
...뭐어, 이게 싫으면... ... 자기? 아니면... ... 집사람? 역시 부인이 정감있지 않나. (눈동자 데록데록...)
 
아르도어:⋯ ⋯ ⋯알겠으니 그만 놀려. 옌.
⋯다른 호칭보다 네가 불러주는 알이 좋아.
 
리우 옌:... ...
... (뻐끔, 뻐끔...)
... 아, 아하하, ... ... 이거 못 당하겠네... (꾸욱, 올라가는 입꼬리 애써 손으로 가리고 눌러 내렸다.)
아, 아. 그, 그래, 맞아. 전에 같이 하고 싶어서 사둔 보드게임이 있었는데, 여기 오면서 챙겨 왔었거든. (급히 말 돌린다.)
같이 할래?... ... (목뒤가 새빨갛다.)
 
아르도어:⋯네 이런 점도 좋고. (감정이 표정에 잘 드러나는 점. 나한테만 보여주는 얼굴이.)
응. ⋯너무 늦게까지는 안 돼.
 
리우 옌:... 좋아. (앞전의 말에 또 잠깐 귓가에 열이 차올랐다가, 고개 돌리며 식혀냈다.)
 
아르도어가 응한다면 옌은 침실에 두고 갔던 소형 캐리어를 열어 보드게임을 꺼내 듭니다.
 
찾은 보드게임은 <이길 테면 이겨봐!>입니다.
 
리우 옌:30칸 짜리 보드 판. 룰은 간단해. 그냥 말이 가장 먼저 끝에 도착하면 이기는 게임이야.
... ... 그냥 하면 재미 없으니... 진 사람이 소원을 들어주는건 어때?
 
아르도어:룰은 이해했다. (끄덕.) ⋯하지만 소원까지 가지 않아도,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줄 생각인데.
 
리우 옌:...
... ... ㅈ, 자, 그... 그럼 시작할까! (손끝까지 벌거스름해졌다.)
... 주사위는 1부터 6까지 있어. ... 먼저 해. 양보 해줄게, 트, 특별히. (버벅...)
 
아르도어:옌 너 빨갛다.
 
리우 옌:... ... 나도 알, ... 알거든.
...네가 좋아서 그래. (속닥.)
 
아르도어:⋯ ⋯ ⋯나도 네가 좋아.
 
리우 옌:... ... 나는 너 사랑하는데. (히죽. 귀가 터질듯 빨개져선 얼른 주사위나 던지라는 듯 손에 쥐여준다.)
 
아르도어:⋯항상 그 소리. 사랑해. 옌. (맞닿은 손이 빠져나갈 때 슬쩍 깍지를 꼈다.)
그냥 굴리면 되나?
 
리우 옌:(꼼질... 맞잡은 손등 위 손가락으로 간지럽히면서,) 응. 그냥 굴려.
 
아르도어:(곰곰. 소원이라. 옌에게 바라는 것이라면⋯.)
(드르륵. 주사위가 손에서 떨어지고 탁상을 구른다.)
6
 
리우 옌:첫사랑... ... 얘기하기, 네.
(알의 첫사랑은... 당연히 나 아냐? 그렇게 믿고 싶다.)
 
아르도어:⋯이건 별로 놀랍지 않을 텐데.
너니까. (당연하게도.)
 
리우 옌:(긴장...)
(... 헤.)
 
아르도어:너한테만 다 줬어.
 
리우 옌:응, 나도 좋아해. (히죽, 히죽대면서 어깨에 촐싹 맞게 기댔다.)
... 앞으로의 것도 다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르도어:⋯계속 함께 있으면 되지. (그렇게 말하고선 떨어진 주사위를 주워 네 손 위에 올려뒀다.)
네 차례다. 옌.
 
리우 옌:...... 그렇지... 헤헤. 그럼. 다음은 나. (큼. 흠. 헛기침 하면서 주사위 손에 쥐었다.)
내가 이겨야 하는데... 1
아.
... ... 장점, 알의 장점...
... 첫번째,
리우 옌한테 미쳤다.
 
아르도어:맞아. (인정한다.)
 
리우 옌:두 번째,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이다.
 
아르도어:그것도 맞고.
 
리우 옌:세 번째는... ... (곰곰...)
존재 자체만으로도, 나를 웃음짓게 만들어주는 사람.
... 끝! 다음은 너야. (괜히 낯간지러운지 불쑥, 주사위 주워 내민다.)
 
아르도어:⋯응. (그건 제가 가진 장점이라기보다도, 상대가 그리 느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론 내뱉지 않는다.)
방심할 수 없겠군. 넌 쫓아오는 속도가 빠르니까. 2
 
리우 옌:(사실 장점을 고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네 모든 점이 장점이라고 하면, 룰 파괴잖아.)
... 허리 둘레... 재보기...
 
아르도어:⋯집이 아니라 줄자는 없어.
대신 네 팔로 가늠해. (그렇게 말하곤 네 손을 이끌어 제 허리에 두른다.)
 
리우 옌:... 내가 해주는거야? 당연히, 네가 하는 줄, 알았, 는데...
(그러면서도 살짝 팔로 감싸 안았다. 의식하고 안아보니, 생각보다는 얄쌍하다는 생각이...)
... ... 아, 알겠다. 그래, 알겠어. (스스로가 허튼 생각 못하게 후다닥 떨어졌다. 얼굴이 터질 듯 발갛다.)
 
아르도어:⋯내가 하는 거면 다시 해도 되는데. (이쪽도 얼굴이 달아오른 것은 마찬가지. 그러나 목소리는 여전히 평조다.)
 
리우 옌:... ... (뻐끔... 푹 숙인 고개 슬쩍 들어 바라보다가,)
... 해볼래? (제 양팔 벌렸다.)
 
아르도어:응. (기다렸다는 것처럼 곧바로 네 허리에 팔을 두른다. 정말로 둘레를 재볼 심산인지, 더듬거리는 손길이 이어지고.)
 
리우 옌:(더듬대는 손길에 잠깐 움찔, 했다. ... 곧 먼산 바라봤지만.)
 
아르도어:⋯됐다. (이윽고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후 놓아준다.)
 
리우 옌:... 응. (조심히 뒤로 물러났다. 새빨간 손으로 주사위 움켜쥐고,) ... 다, 다음 할...게.
(이상한 건 아니길...) 2
(아니하필)
 
아르도어:
 
리우 옌:...
 
리우 옌:... ... ...
 
아르도어:⋯.
 
리우 옌:아, ... 알로! 해볼게.
 
아르도어:기 대 중
응.
 
리우 옌:알, ...
... 사랑해. (품에 꼭 껴안았다... 얼굴이나 표정 보이지도 않게, 아주 꼭.)
일행시 끝. ... (어설펐지만 그런대로 넘겼다. 부끄러운지 손에서 진동이... ...)
 
아르도어:사랑해, 옌. (꼭 맞춘 것처럼 이어지는 대답.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여상하다.)
 
리우 옌:어, ... 얼른 하기나 해... (궁시렁 대는지, 애마냥 투덜대는지.)
 
아르도어:흠. 5
 
리우 옌:아 ...
 
아르도어:안 갈았어
 
아르도어:⋯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리우 옌:... 안할거였어? (물끄럼...)
 
아르도어:⋯말 그대로 결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겠지만.
여전히 너와 같은 지붕 아래에서, 함께 눈을 뜨고 잘 자라는 인사를 하는 일상이었을 거다.
 
리우 옌:... (빤......히.)
 
아르도어:⋯이걸론 부족해?
 
리우 옌:그럼 그 때도, 옌, 사랑해. 라고 했을 것 같아?
(본 목적.)
 
아르도어:응.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 미래는 없었을 테니까.
 
리우 옌:... ... (만족!)
(품에 머리 부볐다. 앞머리가 다 까지도록...)
 
아르도어:(픽 웃는다.) 넌 알기 쉬워.
계속 이러고 있어도 난 좋지만, 그럼 이 게임은 내가 이긴 걸로 할 건데.
 
리우 옌:... 아니? 안되지, 그건. (벌떡! 승부욕에 불타기라도 한건지 손에 주사위 집어 들었다.)
오늘은 운이 안좋은 것 같지만... 원래 이런 위기가 한 번 닥쳐 줘야 게임은 재밌는 법. 6 자, 봐.
... 봤지?! (으쓱!!)
 
아르도어:응. 봤어.
(박수쳐줌)
 
리우 옌:헤헤,... 손크기라.
(박수치는 알 손을 슬쩍 끌어와서는... 맞대었다.)
(마주 댄 손은 크게 두드러지는 차이가 보이진 않았지만... 옌이 아주 조금, 더 컸다. 슬쩍 깍지 끼면서,)
내가 조금 더 크네.
 
아르도어:⋯처음 만났을 땐 내가 더 컸을 거다. (마주 깍지 낀 손을 내려다본다.)
 
리우 옌:... 그 때는 그럴 만도 하잖아? 난 갓 성인이었는데. (물끄럼.)
 
아르도어:그랬지. (묘해진 표정. 과거를 회상하는 듯 잠시 말이 없더니.) ⋯자랐군.
 
리우 옌:키도 컸지. (제 머리위로 손 까딱였다.)
너 따라 잡고 싶어서 우유도 많이 마셨는데. ... 아직도 한참 남았네.
 
아르도어:(그러고 보면, 오늘 마주한 옌의 얼굴은 더⋯.)
 
리우 옌:... 뭐, 왜? 뭐가?
... ... ... 왜, ... ...
 
아르도어:너도 나이를 먹는군 싶어서.
 
리우 옌:... ... 뭔지 모르겠는데 일단 잘못했어...
그럼 나이를 먹지, 안먹어? 나는 뭐 사람 아니냐.
 
아르도어:⋯응. (계속 어리게 느껴졌다는 말은⋯ 안 하는 게 좋겠지.)
 
아르도어:지금도 충분해. 더 안 커도 된다.
 
리우 옌:왜? 더 크면 너랑 같은 눈높이에 설 수 있는데.
... 일단 굴려. 다음은 너. (손에 주사위 쥐여주며...)
 
아르도어:⋯. 4
 
리우 옌:... 토끼귀.
 
아르도어:⋯ ⋯ ⋯.
 
리우 옌:아, 여기 보드게임 안에 포함되어있네, 토끼 귀가. (냅다 꺼내며...)
 
아르도어:⋯잠깐.
다시 굴리는 건 없나?
 
리우 옌:그런게 어딨어?
써줘. 얼른. (칭얼...)
 
아르도어:이 나이에?
 
리우 옌:응.
 
아르도어:⋯.
(얌전히 썼다. 규칙은 규칙. 어쩔 수 없겠지.)
 
리우 옌:(흡. 웃음 최대한 참으려 입술 앙 다물었다...)
... ... 귀여워, 잘 어울려.
 
아르도어:네 덕에 생전 안 해보던 짓을 해.
네가 썼으면 더 좋았을걸.
 
리우 옌:새삼스레 뭘. 항상 그랬으면서. (히죽히죽,)
... ... 그건 못 들은 셈 칠게. (주사위 굴렸다. 1)
 
아르도어:⋯.
 
리우 옌:아.
다..........
다시 굴리는 건 없어?
 
아르도어:⋯그런 게 어딨어? (네가 한 말을 똑같이 한다.)
말해.
 
리우 옌:...............
(뻐끔... 뻐끔... 눈동자 휘적휘적... 이리저리...)
 
아르도어:⋯널 닮았으면 좋겠어.
 
리우 옌:... 둘... 아니면 셋... 정도...... (목소리 개미만해졌다.)
... 엄마를 더 많이 닮은게 좋겠지... ... (눈동자 널 향했다가 네 배로 향했다가... 푹 숙였다. 낯이 뜨거워 미칠 것 같다...)
... 널 닮은 아이들이 둘, 셋, ... 이러면... ... 엄청 행복하겠지, 응. (낯꽃 벌그스름한 주제에 잘도 웃는다.)
 
아르도어:⋯ ⋯ ⋯그럼 한 명은 널 닮고, 한 명은 날 닮는다면 좋겠지.
(정적. ⋯툭. 네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사고가 잘되지 않아. 얼굴, 이마, 귀까지 전부 붉게 물들었다.)
 
리우 옌:... ... ... 다, 다음... (두 사람 다 빨갛게 물들었다. 근처의 공기에서 열감이 느껴질 정도로... 얼룩덜룩 붉게 물든 손으로 네 손 깍지 껴 잡았다.)
... 굴려. 여기. (주사위 넘겨주며,)
 
아르도어:⋯나는 칸이 얼마 안 남았는데. (장기 말을 손가락 끝으로 툭 건드린다.)
(무어라 말하려다, 승부를 단정 짓는 것은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잠자코 주사위를 던졌다.) 1
 
리우 옌:... 이젠 초심자의 행운도 끝인가봐? (쳐다봄...)
 
아르도어:그럴지도. (겨우 한 칸. 그러나 지침은 쉬웠다.)
네 생일. 전부 그걸로 통일되어 있어.
 
리우 옌:... ... ... ...
... 그건 마찬가지인데.
 
아르도어:⋯.
 
리우 옌:이래서야 비밀번호라는 의미가 없잖아. (키득댔다.)
 
아르도어:그래. 이렇게 허울뿐인 보안이어서야.
(어깨를 으쓱하고는 주사위를 넘겼다.)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 확인해 봐라.
 
리우 옌:... 좋아. 이제부터 전세역전, 리우 옌의 시간이다. 1 (의기양양하다.)
...아.
....
...
난 위기를 좀 즐기는 편.
 
아르도어:⋯.
분발해.
 
리우 옌:... 내가 봐준거라고...
... 결혼 안한 미래 설계. ...
...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니, 애초에 좋아하는데도 결혼하지 않은 미래는 없었을거야.
네가... 네가 너무 좋아서, 계속 곁에 남아주길 원했으니까... ... 어떤 형태로든 곁에 두고 싶었을테니... 음, ... 그러니...
 
아르도어:(이번에는 잠자코 네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이어지는 말들을 듣다 한마디 꺼낸다.) ⋯네가 날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
 
리우 옌:결혼하지 않은 미래는, 아마... 내가 네 곁에 가족, ...동반자로서 머무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살아가는 삶이었겠지.
... ... 뭐?
이건 확실하게 말 할 수 있거든? 널 안좋아하는 나는 세상에 없었을거라고.
다시 태어나도, 다른 세상의 너라도, 설령 나를 모르는 너라도... 난 사랑할거야.
 
아르도어:⋯ ⋯ ⋯어째서 그렇게 확신해?
 
리우 옌:... ... 그야 너니까.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건... 너 하나 뿐이니까.
네가 없다면 난 무너지고 말거야, 그건 자명한 사실이지. ...이것만은 알아.
큼, 흠. 다, 다음. (조금 부끄러웠는지 헛기침 몇번 토해내다가...)
다음도 좀 봐주세요, 부인. (주사위 넘겼다.)
 
아르도어:⋯ ⋯좋아해. 옌. 네가 없으면 안 돼.
 
리우 옌:... ... 응.
 
아르도어:(부드럽게 풀린 얼굴엔 미소가 번진다. 붉어진 낯은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이렇게 물들었을 것이다.)
그건 고려해 볼게. 2
 
리우 옌:............
... ...
 
아르도어:이것도 걸친 옷에 포함되나?
 
리우 옌:(주섬주섬...... 조용히 5까지 적혀있는 주사위 내민다.)
... 아니? 그건 ... 옷이 아니라 코스튬이지. (막이래)
 
아르도어:⋯.
2
 
리우 옌:...
(일단 제 눈 가리고 있다........)
... 아, 안볼게.
 
아르도어:봐도 돼. (숫자를 확인하고는 입고 있던 와이셔츠의 단추를 푼다. 이미 몇 개 풀어진 터라 얼마 걸리지 않았고, 상의를 등받이 의자에 걸쳐둔 채 일어선다.)
 
아르도어:(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은 바지를 벗었고, ⋯곧이어 팔에 걸친 채 확인하란 듯 눈을 마주했다. 남은 것은 속옷 정도.) 이러면 되나?
 
리우 옌:으, 으, 아, 아... 아... (손으로 얼굴 가리고 있는데도 새빨개진게 여실히 보일 지경이다...)
 
아르도어:계속 해. (그 상태로 도로 자리에 앉았다. 주사위를 그쪽으로 민다.)
 
리우 옌:여, 여자애가 무, 무슨! (난데없이 사자후 내지르면서 제 품으로 확 끌어안았다. 시선은 먼산 보는채로...)
...밖에 보이면 어떡... 해... (하면서 조용히 손에 주사위 쥐었다.)
 
아르도어:(얼떨떨하게 품에 안긴 채, 눈동자만 굴려 힐끔 본다.) ⋯너 이외엔 볼 사람 없어.
 
리우 옌:... ... ... 그래도 싫어... (고개 푹 숙인채... 살 마주닿자 얼굴이 익다 못해 활활 타오를 지경이다.) ... 나만 보고 싶어, 이런건...
... 3 (땀 젖은 손으로 주사위 굴렸다.)
... ... 진짜..?
 
아르도어:⋯진짜.
 
리우 옌:진짜... 입어? (쳐다봄...)
 
아르도어:응.
 
리우 옌:(입술 달싹... 뭐라 말하고 싶었는데... ... 자기가 여태 해온 게 있어 말도 못 꺼내고 멀뚱히 있다가,)
 
아르도어:⋯나랑 같은 벌칙 정도로 봐줄 수도 있고.
 
리우 옌:... ...
나 두 겹 벗으면 나체인데.
 
아르도어:⋯ ⋯ ⋯.
응.
 
리우 옌:... ... ... ... ...
... ...
 
리우 옌:(슬쩍 일어나 허리춤에 두르고 있던 끈 풀었다. 툭, 하고 샤워가운이 바닥에 떨어졌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하고 꼼짝없는 나상이다. 애진작 온몸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 ... 만족해? ...
(그러면서 뒤에서 살짝 껴안았다. 안고 싶어서였는지, 부끄러워서였는지, ... ...)
 
아르도어:⋯ ⋯ ⋯. (못 박힌 듯 가닿은 시선. 머리가 익는 것 같은 열감이 차오름과 동시에⋯ 쇄골 부근에 그려진 문신에도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만족하냐는 물음에 곧이곧대로 답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었겠지.)
⋯아.
(그러나 그 상태로 밀착하는 것은 예상외였다. 즉, 얼어붙었다는 소리다.) ⋯ ⋯ ⋯옌.
 
리우 옌:... ... ... ... (귀 터질듯 익었다. 이, 이거... ... 분위기가,...)
(마른 입술 혀로 한 번 축이곤, 네 어깻죽지에 고개 파묻으면서 나직하게 귀에 속삭였다.)
(끌어안은 손이 흉부 위로 조금씩 타고 오르더니, 살짝 끌어안고선 부추긴다.) ...얼른 주사위 굴리지 않고 뭐해.
 
아르도어:(작게 몸을 움찔거렸으나 제지하지 않는다. ⋯알고 있다면, 그만두게 시킬 생각은 없었으니까.)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온 신경이 어디로 가있는지 알면서도, 주사위가 손에서 떨어진다.) 2
 
리우 옌:... ...
내가 잴래.
... ... ... 그래도 돼? (힐끔.)
 
아르도어:응. ⋯그렇게 해.
어차피 지금 네 손도, ⋯올라가 있잖아.
 
리우 옌:...
... 아직 안, ... 안올라갔어.
 
아르도어:⋯해.
 
리우 옌:(그렇게 말한 것 치곤... 슬금슬금, 살결 조심스럽게 거슬러 올라가 살짝 도드라진 부분에 기어코 닿았다. 천천히 손가락으로 감쌌다가, 천천히 다시 피고, ... 그걸 몇차례 반복하더니... ...)
... ... 잘 모르겠는데.
(하고, ... 손이 속옷 사이로 슬그머니 기어들어온다.)
 
아르도어:(닿는 살결이 타오르는 것처럼 뜨겁다. 조심스러운 손길에 되레 긴장감이 감돌고, 그걸 해소하고자 작게 숨을 몰아쉰다.) 응⋯.
(비록 나오는 목소리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형태이긴 했어도. ⋯고개 숙여 내려다본 아래에는 속옷 틈새로 파고든 손이 보였다.)
⋯ ⋯변태.
 
리우 옌:... ... ... 이견 없어. 그리고...
변태는 너잖아. (귓가에 입술 닿일듯 낮게 속삭이곤...)
 
아르도어:⋯네가, ⋯안아서 그래.
 
리우 옌:아하, ... ... 그러셔?
(그 말에 몇차례 더 쓰다듬고, 만지작대다가... 끝내 끄트머리 한 번 꼬집고서야 손 떼어냈다. 모른척 다른데로 눈길 돌렸다.)
... ... 이젠 확실히 알겠다. ... 주사위 굴릴게. (목이 바짝 섰다.) 1
... ... ... ... ...
...
... 진짜... 해?
 
아르도어:(으응. ⋯응⋯. 척 듣기에 민망하다 싶은 소리도 손길이 가심과 함께 곧 조용해졌다. 손등으로 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가늘어진 눈으로 상대에게 시선을 둔다.)
⋯해.
(자기가 쓰고 있던 토끼 귀 손에 꼬옥 쥐여줌)
 
리우 옌:... ... (그 소리에 눈 돌릴 데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선이 튄다. 아, 진짜... ... 미치겠다... 애써 피가 몰리는 듯한 기분을 가라앉히려 애쓴다.)
... ... 그래, 이거라도 해야지... (자신의 꼴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지 빤히 다 아는데도, ... 방금 자신이 당신에게 한 짓이 뭔지 알아서 거절하기도 참 뭣했다.)
 
아르도어:⋯ ⋯ ⋯옌.
너 야해.
 
리우 옌:... 미,
... ... 미친소리 마... (얼굴 터지기 직전이다.)
 
아르도어:⋯잘 어울리는데. (이쪽은 진심이지만.)
 
리우 옌:... ... (입 연채로 말 뱉지 못하고 입안에 머금더니,)
... 아까, ... 아까 전의 너도... ... 야했어.
 
아르도어:이 게임이 끝나면 벗게 해줄⋯ ⋯.
 
리우 옌:(손으로 얼굴 닦아냈다. 땀이 흐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 가만히 못 있겠지... ... ...)
 
아르도어:⋯ ⋯ ⋯. (할 말을 잃었다. 정확히는, 나올 말을 찾을 수가 없어서.)
(손에서 저절로 떨어져나왔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주사위가 홀로 굴러간다.) 3
 
리우 옌:... ...
 
아르도어:⋯.
 
리우 옌:(목을 타고 어깨까지 흐르던 머리칼 모아 선 드러냈다.)
...깨물어도 돼.
 
아르도어:⋯내 승리야.
(그 말끝으로 네 팔을 붙잡는다. 벌어진 입은 정확히 목―급소을 향하고, 드러난 흰 살결에 이를 박아 넣었다. 아프게.)
(잡아먹을 듯 잘근잘근 살을 씹어대는 행동에, 그 몸에 자신을 새기려는 행동은, 어떤 욕망이 없지 않고서야⋯.)
 
리우 옌:...아, 읏. (그 소리를 끝으로 입술을 꾹 눌러 닫았다. 낯은 진작에 빨갛게 물들어 더 달아오를 구석도 없었건만 식을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
(... 하아, ... 내쉰 숨에 열기와 작은 떨림이 서려 있었다. 입 떨어진 곳에 실처럼 타액이 늘어진걸 모를 리 없었다. 물린 곳이 타는 듯이 저렸음에도 그것마저 기꺼웠다.)
... ... 기분이 좀, ... (달싹,) ... 이상한데. (끄응, 한 번 앓는 소리 내더니... 주섬주섬 샤워 가운 들어 제 아래춤 가렸다. ...)
... 마지막이겠네. ... 3
(..............)
... 이... 이건 봐줘. (아래에 널려있는 샤워가운 봄.. 알 봄...)
 
아르도어:⋯알아. 거기서 더 벗을 옷도 없지. (잇자국 새긴 곳으로부터 입가까지 흰 선이 이어졌다.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이는 행위에는 만족감 서려 있음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열망을 엿보았을지도 모를 일.) ⋯그대로 더 있다간 감기에 걸릴 거다. 이제 옷 입어. ⋯차를 준비해 뒀었는데, 깜빡 잊고 있었군. 바로 가져올게.
(마지막으로 손아귀를 벗어난 주사위의 숫자는.) 4
 
리우 옌:... 응. ... 안그래도 입을 생각이었어... (몸 돌아 샤워가운 몸에 걸쳤다. 어느새 발끝까지 온 전신이 벌겋다.)
... ... 소원은... ... ... 차 가져오면서, 생각해둬. (주섬주섬 보드게임 정리한 뒤, 알의 침대에 풀썩 누우면서.)
 
아르도어:(의자에 걸쳐둔 셔츠를 대충 걸치고선 주방으로 향했다. 다행히, 차는 마시기에 나쁘지 않을 정도로만 식어있다. 가볍게 곁들일 쿠키를 함께 접시에 담고, 방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마실 건가?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 봄)
 
리우 옌:... 응. 여기서 뭐 할 게 있어서. (그러더니 스르륵...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 ... 알, 네 방 구경해도 돼?
 
아르도어:(순간, 옌이 말한 의도와는 다르게⋯ 그런 쪽으로 생각해 버린 스스로가 더없이 ⋯처럼 느껴졌다.) 아, ⋯방 구경 말이군.
 
리우 옌:... 왜?
... ... 무슨 생각 했어.
 
아르도어:(달그락. 옌 몫의 차를 따르는 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잠시 뒤 네 손에 잔을 쥐여주고서야, 뒤늦은 답.) ⋯이미 알고 있으면서 묻지 마.
해도 돼. 숙소라 볼 건 많이 없겠지만.
 
리우 옌:... ... (그 말을 듣고서 더없이 히죽댄다.) ... 헤-.
(차 두모금, 쿠키 하나를 입에 구겨넣고선... 무언가 찾기라도 하는듯 온 방 안을 돌아다니며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다가... 문득.)
 
아르도어:
기준치: 50/25/10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리우 옌:... 어라?
 
아르도어:⋯왜?
 
리우 옌:(침대와 벽 사이 빈틈에서... 한 눈에 보아도 야한 잡지인게 분명한... 책을 꺼내들었다.)
... 변태.
이런 것도 볼 줄 알았어? 나, ... 알이 이렇게까지 엉큼할 줄은...~
 
아르도어:⋯ ⋯ ⋯.
⋯안 믿겠지만 내 게 아니야. 이전에 방을 쓰던 사람이 두고 간 물건이겠지.
 
리우 옌:그으, 래?
 
아르도어:난 너 이외 다른 사람에겐 흥분하지 않으니까.
 
리우 옌:(팔랑팔랑, 넘겨보다가 귀퉁이 접혀있는 페이지 펼쳐본다. 물끄럼...)
그럼 이건? (묘하게 닮아있는... 갈색머리의 남자가 홀딱 벗고 토끼 머리띠를 쓰고 있다.)
아, 오케이, 오케이. 나 이제 알겠어.
 
아르도어:⋯ ⋯ ⋯.
 
리우 옌:... 알의 성적 취향.
 
아르도어:⋯아니야.
 
리우 옌:받아들여야지, 충분히 이해해.
 
아르도어:아니라고 했다.
 
리우 옌:앞으로 이런건 숨기지 말고 봐.
... 내가 해줄게.
 
아르도어:⋯ ⋯ ⋯.
 
리우 옌:큼, 흠. 아무튼, 내가 찾으려던건 이게 아니라... ...
 
아르도어:놀리지 마. 정말 아니니까⋯. (그 말에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선 너를 살짝 끌어안는다.) ⋯말해.
 
리우 옌:... ... (마저 뒤적... 뒤적이다가, 아! 탄성과 함께 꺼내든 것은...)
 
옌은 사진 앨범을 찾아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내온 시간이 담겨있는 앨범입니다.
 
리우 옌:결혼 전날이잖아?
같이 추억을 되새기고 싶어서… 일부러 챙겨왔어.
나 잘했지?
 
옌이 칭찬을 바라기라도 하는 듯 머리를 드밉니다.
 
아르도어:앨범. ⋯응. 같이 보면 좋겠지. 잘했어. (안고 있던 손을 들어 올려 네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귀 뒤로 넘겨주었고.)
(곧 자세를 고쳐 네 옆에 앉는다. 잠시 고민하더니.) ⋯베개 필요해?
 
리우 옌:(손이 머리 위에 닿자, 기분 좋은듯 손바닥에 머리 부볐다. 쿠키 입에 오독 오독 물고선... 살짝 끌어안은채로 침대 위로 몸 올렸다.)
응, 주면 좋지. (헤헤, 잘게 웃으면서 앨범 펼쳐냈고...)
 
아르도어:⋯그걸 물은 게 아니면? (그 말과 함께 끌어당긴 손이 몸의 중심을 잃게 한다. 한 번 천장이 휘청이고 나면, 제 다리 위 머리를 올려놓은 모습이다.)
⋯거치대로 써. (본래 용도를 잃은 쿠션을 품에 안겨준다. 뻔뻔하기 그지없다.)
 
리우 옌:... ... 음? 그러면, (말을 다 잇지도 못하고 끌어오는 대로 이끌려 풀썩, ... 제자리 찾아오기라도 하는 듯 다리 위에 머리가 놓인다. ... ... 귀가 발그스름 해져선,)
... 뭐야아, 갑자기.
(그래놓고선 좋다고 꼼짝도 않고 앨범 펼쳐냈다. 어디, 볼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여기서 아르도어는 2번의 1D5를 굴려 나온 숫자의 사진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roll 굴려주세요!
 
아르도어:1
 
리우 옌:어, 이거 입대식 날 사진 아닌가?
 
아르도어:그런 것 같군. 널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나?
 
리우 옌:으음, 좀 가물가물하긴 해. 벌써 10년... 아니, 20년이 지났으니까.
그래도... ... 내가 너한테 별로 좋은 감정을 느끼진 못했단건 선명히 기억하지. (...)
(우물우물...) 샌님. 그랬던가?
 
아르도어:그런 건 또 정확히 기억하는군. 맞다. ⋯그때는 내가 서툴렀어. 사람의 사정은 함부로 짐작하는 게 아니었는데.
널 울렸지. 난 그게⋯ 계속 기억에 남아. 지금까지도⋯. (그래서 네 우는 얼굴에 약한 것 같다, 고. 말을 삼켰다.)
 
리우 옌:... 뭐야, 너무 옛날 얘기잖아. (옆으로 누워있다가 빙글, 몸 바로 뉘였다.)
되려 그때의 내가 서툴렀었지. 네가 아니었더라도... 그 어떤 사람이든 날 한 번쯤 터뜨렸을지 모르는 일이야.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네가 그렇게 해줬기에...
... 지금의 나로 있을 수 있던 거니까. 그래서 네가 마음 아파하진 않았으면 하는데. (찡그리듯 웃었다.)
 
아르도어:⋯그래. 후회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네 말처럼, 그 일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거라는 걸 알아. 그때의 미숙한 나여서 가능했다는 것도.
그래도 그때의 너에게 좀 더⋯ ⋯다정했으면 좋았겠지. 그런 아쉬움은 남아.
 
리우 옌:... 우리는 서로한테서 다정을 배운거잖아. 그때의 그건... 우리의 최선이었을지 모르지. 아쉬워하지 않아도 돼.
... 응석받이로 자랐다면 그건 그거대로 골치 아팠을걸. (이미 너 한정으로 응석받이지만. 손 들어 뺨 살살 쓰다듬다가...)
다음 사진도 볼까? 재밌는게 많은데.
 
아르도어:⋯응. (손에 기대어 잠시 시야를 닫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듯,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눈을 뜬다.)
2
 
리우 옌:아.
이거... 우리 서로, 청혼했을 때지?
... 나 퇴원하고 나서 얼마 안되고... 같이 밥먹으러 갔을 때였던 것 같은데.
 
아르도어:응. ⋯병원에서 한 건, 제대로 된 신청은 아니었으니까.
그럴듯하게 근사한 곳에서 네가 웃는 걸 보고 싶었어. ⋯설마 각자 몰래 준비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지만.
 
리우 옌:큭큭... 그때 진짜 웃겼다니까. 하필 예약도 겹쳐서, 결국 내 쪽에서 예약 취소했던게 아직도 기억이 나. 하도 어이가 없었어서...
... 반지 케이스 내밀었을 때의 알, ... 네 얼빠진 표정이 얼마나 웃겼는데. 둘 다 어쩜 그렇게 생각이 똑같은지... 서로 양 손에 끼워주면서 큭큭댔잖아.
 
아르도어:덕분에 식당은 우리밖에 없어서 한적하긴 했었고. ⋯옌 네 표정도 말도 선명하게 기억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 내가 먼저 하려고, 해, 했는데⋯." 이랬었지.
 
리우 옌:... ... 그거 꼭, 굳이 안 짚어줘도 되는데...
 
아르도어:⋯사랑스럽다고 생각했으니까. 기억에 남아서 말한 건데.
 
리우 옌:... ... 낯부끄럽잖아, 꼭... 그런걸... (끄응, 앓는소리 내면서 마른세수 벅벅벅...)
꼭... 그런 것만 기억하지... ...
어쩔 수 없잖아, 네가... 내 손을 덥썩 잡고 먼저 프러포즈를 해버렸으니까. 한 발 늦은 거라고... 내가 얼마나 공들여 준비했었는데.
덕분에 이벤트고 케이크고 뭐고... 전부 엉망이 되었었지만, 계획도... 다 무너졌지만.
그래도... 네가 나랑 같은 마음이라고 해줘서 기뻤어.
 
아르도어:⋯응. ⋯계속 옆에 있겠다고 한 말. 내 곁이라서 좋다고 했던 것도. (네 손을 들어 길게 입 맞춘다. 그때처럼.) 아직도,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해줘⋯.
좋아해. 사랑해. 옌. ⋯네가 내 배우자였으면 좋겠어.
 
리우 옌:... ... ... 응.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나도 계속... 곁에 있고 싶어. 난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그럴거라고 대답해줄 수 있어. 그러니...
약속해줘, ...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내 모든걸 줄테니, 내가 안심할 수 있게 해줘... 가끔은 두려워져서. ... 나도 모르게. ...아마 그 때 이후부터인거겠지. (비가 오는, 새카만 곳에 혼자 남겨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르도어:⋯ ⋯ ⋯안심해. 옌. 나는 네가 없는 삶이 죽어있다는 걸 알아. 네가 사라진 빈자리의 고독함에 질식할 것 같은 감정을 알아. 네가 그립고, 보고 싶어서. ⋯차라리 네가 있는 곳으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었을 때의 절망감을 알아.
그러니 약속해. 나는 널 떠나지 않아. ⋯적어도 내 자의로는 그럴 수 없어. 네가 내 삶이니까. 너는 나의 숨결이니까.
 
리우 옌:... 응.
... ... 다행이다. (그렇게 중얼거리고선 가까이 있던 네 손 움켜쥐었다. 깍지 껴 쥐고서 제 품으로 조심스레 끌어온다.) 다행이야...
좋아해. ... 사랑해, 알. 네가 내 배우자라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
(차곡차곡, 네가 했던 말 되짚어갔다.)
 
아르도어:⋯몇 시간 후면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맹세하겠지. 네가 내게, 내가 네게⋯ 모든 것을 주겠다고.
그때 가서 그렇게 불러줘. 네가 내 연인이 아니라, ⋯삶을 함께하기로 한 부부라고.
 
리우 옌:... ... ... 응.
... 좋아해...
(깍지 낀 손을 품에 감추기라도 하는 듯 끌어안았다가, 이윽고 살짝 풀어 팔로 허리를 감싸 안았다. ... 그렇게 요지부동으로 가만히 끌어안고 있다가...)
 
충만해진 애정에 분위기가 무르익었기 때문이든, 혹은 추억을 되짚어가며 두사람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든,
 
... 옌의 스킨십이 점점 농익기 시작합니다.
 
허리를 끌어안던 손이, 차츰 등을 타고 오르더니 더듬대는 손이 꼭...
 
...
 
어떤 오해가 깊어질 무렵, 옌은 아르도어의 옷 안으로 손을 넣어 몸을 가리고 있는 천을 끌어 올리고, 드러난 허리에 입을 맞춥니다.
 
제법 간지러울지도 모릅니다.
 
움츠러드는 아르도어를 잡고 이어서 입술로 허리 부근에 도장을 찍던 옌은 자세를 고치기 위해 몸을 일으키다 앨범을 건드립니다.
 
리우 옌:...
 
두 사람이 쓰기엔 침대가 조금 좁았기 때문일까요, 앨범은 맥없이 떨어집니다.
 
이런, 대충 끼워둔 사진 몇 장이 앨범을 빠져나와 바닥으로 튀어버렸군요.
 
아르도어: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르도어의 시야에 어떤 사진 하나가 들어옵니다.
 
서늘한 바람이 불던 그 무렵의 봄을 기억하나요?
 
아르도어는 기억할 거예요.
 
눈부신 빛을 터뜨리던 불꽃 사이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눈에 담았던 기억은 잊을려야 잊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주변을 가득 채우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폭죽이 터지는 소리.
 
그 속에서도 뚜렷하게 들렸던 서로의 목소리.
 
...아직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 말 뒤로 서로의 어깨에 기대 손을 잡고 함께 불꽃놀이를 구경했었죠.
 
대관람차에서 내려와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은……
 
아까, 옌의 가방에서 본 사진과 같은 것입니다.
 
아르도어가 착각한 걸까요?
 
아니면 이 사진만 두 장을 뽑았던가요?
 
아르도어:
지능
기준치: 30/15/6
굴림: 96
판정결과: 대실패
 
... 잘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
 
하도 오래 된 일이라 그런 걸까요?
 
그래도 조금 더듬어보면... 그 사진은 한 장 뿐이었던 것 같기도합니다.
 
음? 아닌가.
 
갸우뚱해지네요.
 
아르도어:⋯.
옌. 잠시만⋯.
 
리우 옌:... 응?
왜? (쪽, 배꼽 근처에 입술 꾹 누르며 답했다.)
 
아르도어:(지금 이 물음을 꺼내기에는 망설여졌지만⋯.) 사진. 놀이공원에서 찍은 것, 한 장이었던가?
 
리우 옌:... ...응?
... 아. 사진?...
찍은 건 한 장이었는데, 나도 하나 가지고 싶어서 복사해뒀었어.
... 무슨 문제 있어?
 
아르도어:⋯아니. 아무 문제도 없어.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보다, ⋯ ⋯계속 할 건가?
 
리우 옌:... 아, ...음.
... (앨범 물끄럼... 그러다 벌떡, 몸 일으켰다. 낯이 조금 뜨겁다.)
그, ... 그래. 거실에 나가서 영화라도 볼...까?
 
아르도어:⋯ ⋯잠은 안 자도 괜찮아? (네 어깨를 감싸 쥐고 몸을 일으켰다.)
 
리우 옌:아까 낮잠을 자서 그런지 그닥 안졸리네. ... 너랑 조금 더 깨어있고 싶어. (바짝 붙어 어깨에 뺨 부볐다.)
... 나가자, 말 하고 보니 영화가 보고싶어졌어. 응? (손 잡고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르도어:⋯.
 
리우 옌:... ... 왜.
 
아르도어:⋯ 응. (이쪽도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은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걷어 올려진 셔츠 자락을 정리하고 네 손을 쥐었다.) 보고 싶은 거라도 있나?
 
리우 옌:... 글쎄, 이런 심야에 내가 보고싶은 영화를 할 지도 모르겠고... ... 애당초 보고싶은 영화가 없으니까...
(시선 딴 곳으로 돌린 채로 흠, 흠. 헛기침만 줄창 늘어놓는다. 침실 바깥으로 이끄는 손길.)
 
알은 방 밖으로 나서기 전...
 
앨범에서 떨어진 사진을 자세히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
 
들지않을까요?
 
아르도어:주워야겠어.
 
리우 옌:알, 얼른 안오고 뭐해? (거실쪽에서 소리 들려온다.)
 
아르도어:응. 잠깐만. (바닥에 떨어진 앨범과 사진을 주워 든다. 앨범에 넣기 전 사진을 확인해보는데⋯.)
 
옌의 기록입니다.
 
가장자리가 조금 너덜너덜한 스마일 스티커가 날짜 위에 붙어있습니다.
 
그것 외 별다를 건 없습니다.
 
아르도어:(⋯보통 사진의 복사본에 이런 기록을 해두나? 액자에 넣은 쪽일지도 모르겠지만⋯.)
(글씨 위를 손으로 훑어내리다, 다시 앨범에 끼워 넣었다. All the time Eternal, 애정하는 사람과 함께. ⋯옌이 보고 싶어졌다. 거실로 나가자.)
 
알은 원래 있던 자리에 반듯하게 다시 사진을 끼워놓고, 방 밖을 빠져나옵니다.
 
비는 그치지 않고 점점 그 소리가 심해지며, 이따금 천둥 번개가 치기도 합니다.
 
5월임에도 조금 쌀쌀한 바람이 창문 밖으로 새어 들어와 옌이 춥다고 느낄 지도 모르겠어요.
 
두 사람은 거실로 나와 소파에 기대앉습니다.
 
비록 날씨는 안 좋지만, 적당히 보드라운 담요, 따뜻한 음료와 간식,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뭐 하나 아쉬울 게 없습니다.
 
마침 TV를 틀자 채널에서는 영화를 상영 중입니다.
 
처음 보는 영화인데, 앞부분이 조금 지나갔는지 당장 스토리가 이해 가지 않습니다.
 
뭔가 속삭이던 두 사람은 얼싸안고 열정적으로 키스하기 시작합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듯 계속해서 키스하고, 키스하고, 키스하더니…….
 
리우 옌:………야한… 영화…네.
 
아르도어:⋯그렇군. 이런 시각이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르도어:⋯ ⋯춥지는 않고? 창을 닫을까.
 
알의 말대로 이후 이어지는 화면은 야밤에나 나올 법한 그런 종류의 것들입니다.
 
보기 민망한 장면과 부끄러운 소리가 화면을 채웁니다.
 
빗소리, 늦은 시각, 어두운 실내, 그리고 단둘.
 
거기에 영상이 곁들여지자 분위기는 삽시간에 진지해집니다.
 
리우 옌:... 으응, 아니야. ...괜찮아.
 
힐끔, 힐끔.
 
옌이 눈치라도 보듯, 눈동자를 바쁘게 알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시야 끝에 걸리네요.
 
이윽고 숨결마저 느껴지는 거리에서 옌이 아르도어 쪽으로 몸을 숙입니다.
 
입가에 닿을 듯 가깝게 다가온 옌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더니 아르도어의 허리께에서 멈춥니다.
 
...
 
아르도어:⋯옌. (나직이 이름 부른다.)
 
리우 옌:...
 
큭큭,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리우 옌:……뭐라도 할 줄 알았지?
 
옌은 계속 웃음을 참고 있었던 듯 킥킥대며 그대로 아르도어의 무릎을 베고 눕습니다.
 
아르도어:⋯ ⋯ ⋯.
 
장난이었던 걸까요.
 
평소에 하던 장난보다는 훨씬 대담한 듯 하지만요.
 
리우 옌:왜, 기대했어?
 
아르도어:아까부터 계속⋯. (말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야, 그렇게 묻는다면.)
⋯안 한 건, 아니지만.
 
리우 옌:... ... 내일 일정에 차질이라도 생길까봐 걱정돼?
 
아르도어:⋯응. 좋은 날로 만들고 싶으니까.
 
리우 옌:(픽...) 걱정 마, 안할거야. ...네가 생각하고 있는 건.
 
아르도어:⋯나 때문에 참고 있는 건가?
 
리우 옌:... ... 아, 음...
... ... 꼭 그런건 아니... 지만... (시선 이리저리 굴렸다.)
... 그렇다고 하면 선심이라도 써주게? (눈 가늘게 뜨고 히죽이는 낯.)
 
아르도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네게 행복한 날이 되었으면 해. 그래서 무리하게 두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네가 참고 있는 거라면 말이 달라져.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 방금 전의 너와 같이⋯. 앞으로, 조금.) ⋯원해?
 
리우 옌:... 나도 네가 무리하지 않았으면 해서, 그래서 참고 있었던 거야. 내일은... ...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에게 행복한 날이 될 테니까.
... ... 넌 원해? 그래도 괜찮아? (네 허벅지에 고개 돌려묻고서, 눈동자만 네쪽으로 향해있었다.)
 
알이 잠깐 긴장을 푼 사이 물컹한 것이 허벅지 안쪽에 닿았다 떨어집니다.
 
뭔가 뜨끈하고, 부드럽고, 말랑한 것이, 마치 입술처럼……
 
아니, '입술처럼'이 아니라 '입술'이었습니다.
 
옌은 짓궂은 표정으로 아르도어를 올려다봅니다.
 
그 입가에서 시선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오늘의 옌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리우 옌:(이번에야말로 조심스럽게 허리 껴안았다. 단 둘만이 있는 공간에, 듣기에 민망한 소리로 가득찬 거실이며, 눈 둘 데 없는 화면이며... 그런것을 다 차치하더라도. 허리를 껴안은 손이 능숙하게 자리를 찾아 등을 더듬어간다. 익숙하게 후크를 풀어내고서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 오늘은, 상냥하게 할게.
 
아르도어:(그래도 괜찮으냐고.) 너는, 항상 이런 점이 짓궂지⋯. 내 대답을 알면서도, 기어코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게 하니까. (저조차도 다 헤아리지 못하는 마음을 어떻게 언어로 바꿀 수 있는지.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건지.)
⋯어떻게 말하면 네가 만족할 수 있어? 너를 열렬히 사모하는 마음이, 벅차서⋯. 목구멍 밖으로 감히 꺼낼 수 없을 만큼 애가 타. 어떻게 해도 이 갈증을 채우는 법을 모르겠어서, 일부러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는 늘, 너를 원해.
(네게 맞추어 벌어진 두 다리. 뻗어가는 손. 네 품을 바라고, 온전히 너와 이어지기를 원해서, 가쁘게 겹친 입술 사이 말이 사라진다. 이 한마디 남겨두고서.)
⋯ ⋯ ⋯참지 마.
 
리우 옌:... (턱, 하고 수벽으로 네 입술을 막아냈다.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허리 제쪽으로 끌어 당겨 바짝 붙였다. 피가, 온기가 아래로 몰려드는 듯한 기분에 잠시 떨었다가.)
... 키스는 내일. 네 신랑이 되는 그 때에 하고 싶어.
그러니 참아줘, 네가 원하는건... 전부 들어줄테니까. (네 팔 끌어당겨 제 어깨 위에 얹고 도드라진 흉곽에 잇자국 잘근대며 천천히 움직였다.)
 
아르도어:⋯.
(끄덕여지는 고개. 그 손에 한쪽 뺨을 기대고선, 잘근. 입안으로 손가락 넣어 깨문다. 대신, 헤집어줘. 그런 의미를 담아서.)
 
장난치고, 이야기하고, 진득한 스킨쉽을 곁들이며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동안, 어느새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체온이 하나로 섞이고, 끈적하게 맞닿은 살이 떨어지고...
 
천천히 온도가 천천히 식어갈 무렵.
 
어느새 처음 보기 시작했던 영화가 끝나고, 다른 영화의 도입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사람도 어느정도 열기가 식어, 옷을 갈무리한 채 나란히 앉아있고요.
 
아르도어는 옌이 콘돔을 매듭지어 꾹 묶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문득 아르도어는 옌의 손가락으로 시선이 갑니다.
 
약지, 결혼반지를 끼우는 손가락에 자리 잡은 은색 링이 어쩐지 낡아 보입니다.
 
아르도어:⋯옌.
 
리우 옌:... 뭘 그렇게 빤히 봐. ... 한 번으로 만족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 응?
 
아르도어:⋯ ⋯그런 게 아니야.
오늘 유독, 네가 자라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옛 사진들을 봐서 그런 지는 몰라도.
 
리우 옌:... 그게 무슨 소리야, 뜬금 없이...
 
아르도어:⋯네 변화는 너보다도 내가 가장 빠르게 알 수 있으니까.
 
리우 옌:...
 
아르도어:옌. ⋯나한테 숨기는 게 있지.
 
리우 옌:...
그런 거 없어.
 
아르도어:⋯ ⋯넌 거짓말에 재주가 없어. 다시 물을게.
내게 알려주기 힘든 이야기인가?
 
리우 옌:... ...
그런... ... (입 꾹...)
... 숨기는 거 없어, 너한테는.
... 음료, 벌써 다 마셨네. 나가서 사와야겠다. (몸 벌떡 일으켰다.)
금방 다녀올게, 밖에 비도 많이 오니까 여기서 기다려. 따라 나오지 말고.
 
아르도어:⋯ ⋯ ⋯.
 
리우 옌:... 아까 했던 말은 잊고.
 
아르도어:⋯난 네가 혼자 힘들어하지 않길 바라. 기다릴게.
 
리우 옌:...
 
아르도어:좋아해. 옌.
 
리우 옌:... ...
... 응,... 나도.
 
그 말을 끝으로,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힙니다.
 
잠시 문이 열렸을 뿐인데도, 한기가 집 안에 스미는 것 같습니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서늘하네요.
 
아르도어는 여태 즐거운 결혼 전야를 보냈을 겁니다.
 
옌의 온기도 없이 혼자 남겨진 자리가, 잠시일 뿐인데도 쓸쓸하게 느껴진다면 거짓말 같을까요.
 
곱씹어보면 오늘의 옌은 어째서인지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죠?
 
아르도어:⋯왔을 때부터 평소와 다른 점은 있었어.
바로 오늘까지도 본 얼굴이 그렇게 다른 느낌을 받기 쉽진 않겠지. ⋯생각해보면 부케 문제로 싸웠다는 것도 그렇군.
옌은 맞아. 하지만 사소한 부분들이 어긋나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정이 있는 건 틀림없어. 나에게 말하지 않으려는 것 같지만. (긴 한숨과 함께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아르도어는 오늘 하루의 기억을 되짚고 지나갑니다.
 
옌의 문신, 두 장의 사진, 흠집이 많은 반지, 무언가 숨기는 듯한 옌의 반응과 ...
 
어딘가 모르게 다른 느낌까지, 이상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아르도어가 생각하던 그때, 영화 위로 뉴스 속보가 한 줄 떠오릅니다.
 
방금 도로에서 트럭 기사의 음주 운전으로 인해 연쇄 차량 추돌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으로……
 
그 주소는 옌의 숙소 근처입니다.
 
아르도어:
지능
기준치: 30/15/6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아르도어:굴려도되?....
 
아아웃겨 네 해보세요
 
아르도어:
지능
기준치: 30/15/6
굴림: 41
판정결과: 실패
 
아니어떡해.. 너무웃기잖아
 
아르도어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습니다.
 
아까 옌이 오지 않았다면, 아르도어는 지금쯤 차를 타고 그 근처를 지나가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요.
 
그와 동시에 다시 옌의 핸드폰이 울립니다.
 
바로 아르도어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옌의 가방 안에서요.
 
아르도어:⋯또 알람인가? (휴대폰을 확인한다.)
 
아르도어가 핸드폰을 확인하면 아깐 끊겨서 확인하지 못한 알람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박또박 적혀있는 그 글자는 바로,
 
알의 기일입니다.
 
아르도어:
SAN Roll
기준치: 85/42/17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르도어:⋯ ⋯ ⋯.
 
그와 동시에 아슬아슬하게 입을 벌리고 있던 가방은 아르도어가 핸드폰을 꺼내자 몇 초 후 힘없이 쓰러지며 저절로 그 내용물을 뱉어냅니다.
 
액자, 다이어리와 상자를요.
 
아르도어는 옌의 짐을 다시 조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르도어:(연쇄 차량 추돌 사고의 속보. 자신이 차를 타고 나갔을 시간. 옌의 알람 속, ⋯자신의 기일. 설마 하는 마음은 점차 확신으로 바뀐다.)
⋯옌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와중에도 먼저 튀어나오는 말은 그렇다. 옌은, 어떻게⋯. 쓰러진 짐 속 액자를 천천히 주워들었다.)
 
터지는 불꽃들을 등진 채, 대관람차 앞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이 찍힌 사진 입니다.
 
아르도어는 사진을 빼서 뒤집어볼 수 있습니다.
 
아르도어:(액자 속 사진을 꺼내 뒷면을 확인한다.)
 
그곳에 있는 것은, 짧은 기록과 날짜입니다.
 
……익숙한 스마일 스티커가 날짜 위에 붙어있습니다.
 
다만 몇십 번을 꺼내서 만졌는지 스티커의 표면은 반질반질하게 닳아있습니다.
 
복사본 따위가 아니라, 이것은 완벽하게 아르도어의 것과 같은 사진입니다.
 
아르도어:
SAN Roll
기준치: 84/42/16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아르도어:⋯ ⋯옌.
⋯무슨 짓을 한 거지. (너는, 괜찮은 건가?)
 
닿을 데 없는 목소리가 거실에 퍼집니다.
 
답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아르도어:(다이어리를 펼쳐본다. 일정을 기록한다면, ⋯실마리가 적혀있을지도.)
 
사용감이 없는 다이어리는 일정을 기록하는 용도 대신 메모장 정도로 쓴 듯합니다.
 
바로 오늘의 날짜에 아르도어의 기일이라고 적힌 것을 제외하면 일정에서는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는 것 같은데요...
 
아르도어:(다이어리를 꼼꼼하게 살피며 한 장씩 넘겨본다.)
자료조사
기준치: 40/20/8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어서 아르도어,
 
아르도어:⋯ ⋯ ⋯다른 세계.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르도어는 세밀하게 끼워진 코팅지를 발견합니다.
 
코팅한 얇은 푸른색의 꽃잎 입니다.
 
만지면 마치 영상이 자동 재생되는 것처럼 아르도어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기억이 밀려옵니다.
 
 
아르도어:⋯.
 
a
 
▶▶
 
a
 
a
 
깜빡,
 
감았던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자 아르도어는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아르도어는 이 기억의 주인을 알고 있습니다.
 
아르도어:
SAN Roll
기준치: 83/41/16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남은 것은 하나 뿐입니다.
 
아르도어:(툭.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바닥에 얼룩을 남긴다. 투둑. 쉴 새 없이 흐르는 감정의 이름은⋯.)
(상자에 손을 올린다. 청자색 리본을 풀어, 뚜껑을 열어본다.)
 
잘 묶인 포장을 풀자, 선명한 청자색의 리본은 가볍게 아르도어의 손목을 타고 흘러내려 갑니다.
 
그 상자 안에 있는 것은……
 
갈색으로 변색한 부케입니다.
 
아름다웠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여기저기 부스러지고, 훼손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단정하게 상자에 담겨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리우 옌:……알, 너 지금… 뭐해?
 
아.
 
언제 돌아온 걸까요?
 
옌은 아르도어를 보고 있습니다.
 
어두운 거실에 조명이라곤 TV의 푸르스름하고 창백한 빛뿐입니다.
 
극적일 정도로 인위적인 순간에 번쩍, 하고 천둥 번개가 내리칩니다.
 
아르도어는 이 모든 장면이 영화의 일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는 이미 끝난 지 오래입니다.
 
한참 전에 시작된 뉴스에선 아나운서가 현장 영상과 함께 사고 소식을 알리고 있습니다.
 
연쇄 추돌 사고에서 생존자는 없으며, 사고를 낸 트럭 운전사 역시 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했다는 내용입니다.
 
아르도어:⋯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했지?
 
리우 옌:... ...
 
아르도어:어떤 방법으로, ⋯ ⋯나한테 다시 돌아왔어?
 
리우 옌:... ...
... 아무, ...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 정말이야.
모른 척 해줘...
 
아르도어:⋯ ⋯널 희생했어?
널 깎아내는 짓을 저질렀어? 옌⋯. 대답해.
아무 일도 없지 않았잖아.
 
리우 옌:... 정, ... 정말이야.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맹세할게. 나, 나 아무것도 안했어.
(툭, 손아귀에 힘이 풀려 쥐고 있던 봉투가 맥없이 떨어진다. 두 발자국 다가온다.)
나, ... 나 옌이야. 네 배우자잖아, ... 네가 싫어할 일은 하지 않았어.
(손 덥썩 잡아올린다. 눈 꼭 감은 채로 제 이마에 마주댔다.) 정말이야...
 
아르도어:(언제나 미적지근하던 손. 그럼에도 추위를 많이 타는 너에게, 온기를 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여겼었다. 지금, 핏기 사라진 서늘함만이 감돈다. 심장이 불안함으로 쿵, 쿵 울리고, 눈가에선 방울진 것이 떨어진다.)
⋯네 기억을 봤어.
내가 본 게 환상 혹은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리우 옌:...
 
아르도어:누가 널 보챘는지 묻는 거야. 옌. ⋯솔직하게 말해.
정말, 아무런 대가 없이⋯ 네가 나에게 돌아온 건지.
 
리우 옌:... ...
(입이 열리고, 닫히고. 말을 토해내려다 집어 삼키고. 말을 정리해 입을 떼려고 해도, 도저히 말이 나오질 않았다. 이런건 예상에 없었는데. 예상에... ... 없었는데.)
(뻐끔대던 입을 곧 틈도 없이 눌러 닫았다. 시선은 여전히 아래를 향한 채다. 옷끝을 손으로 꽉 눌러쥐더니 서서히 시선을 들어 네 시선을 마주했다.)
... ... 나도 몰라, 정확하게는... 사람인지, 사람이 아닌건지도... 모르겠어. 아마 여기까지 나를 보내준 걸 보면 사람은 아닌거겠지.
그래도... 널 볼 수 있었잖아... 널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잖아, 그래서,
 
아르도어:⋯ ⋯.
 
리우 옌:... ... 눈을 줬어.
돌아가면 아마 보이지 않겠지, ... 하지만 괜찮아, 네... 네가 있을거잖아. 내 곁에 있어준다고 했잖아.
내 곁에 평생 있고 싶다고 했잖아... ...
그러니까 한 번만 속아줘, ... 한 번만 더 넘어가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나한테 입 맞춰줘, 부탁이야...
 
아르도어:⋯ ⋯그럼 왜, ⋯아까 내가 입 맞추려 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았어?
 
리우 옌:... ...
 
아르도어:그때 했으면, 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너와 영원히 함께할 수 있었잖아.
 
리우 옌:... 네가... ... 너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았어...
네가 나를 싫어하게 되면, 그래서 내가 또 널 잃게 되어버리면...
...난 어떻게 해야해?
 
아르도어:⋯.
(침묵. 곧, 한 걸음도 채 남겨두지 않고 네게로 다가간다. 당장이라도 입술 겹칠 것처럼 가까워지는 얼굴이⋯ 그대로, 스쳐 지나가 네 어깨에 파묻힌다.) 미안해. ⋯ ⋯ ⋯혼자 남겨둬서 미안해.
차가운 빗속에서 울게 만들어서, 미안해. 약속을 어겨버려서 미안해. ⋯결혼식, 망쳐버려서 미안해⋯.
 
리우 옌:... ... (제 곁을 지나 어깨에 기대는 당신의 낯을 가만히 느꼈다. 시선은 여전히 네가 전에 있어야 했을 그 자리에 머무른다. 폐부 안에 녹아든 공기가 시려워 품에 가득 너를 안았다. 그 온기가 안으로 전해질 수만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랬다면, 정말 좋았으려나. 마지막으로 껴안아본 내가 아는 알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이었다. 제 자리를 되찾은듯 심장이 크게 요동치고, 두 눈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양 팔에 힘을 줘 깨질것처럼 껴안았다. 가지마, 가지마, 나한테 와, 미안하다고 하지 마... 그런 말들이 거친 호흡과 함께 뒤섞여 구분되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아르도어:미안해. 옌. 나는, ⋯네가 사랑한 아르도어가 아니야. 너의 알이 아니야. 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다른 세상의 나라도, 설령 너를 모르는 나도.' ⋯너를 사랑하겠지. 지금의 나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말했겠지.
그러니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너와 행복한 결혼식을 맞이하고 싶었던 '나'의 대리인인 셈이야. ⋯사랑해. 옌. 정말로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 나를 사랑해 줘서. 너를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리우 옌:... ...
 
아르도어:네가 내 배우자였다면, ⋯너를 내 남편이라고 소개할 수 있었다면. 정말로 행복했겠지.
하지만 타인의 증명이 없어도, 증인이 없어도, ⋯다름 아닌 내가, 네가 서로를 영원한 사랑이라고 여기니까 괜찮은 기분이 들어.
흰 장미로 하겠다고 고집부려서 미안해. 옌.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어. 꽃은 언젠가 시들어버리지만, 흰 장미는 시든 후에도 꽃말이 남아있다고.
⋯'당신과 영원을 맹세합니다.'라고.
 
리우 옌:...
... 좋아해, ... ... 좋아해...
... ...사랑해...
 
아르도어:⋯영원히, 함께하겠다는 말 기억해? 언젠가 바람 흩어지고, 불꽃이 사그라들어도.
나는 네 곁에 있을 거야. 네가 그랬듯, ⋯그 어둠 속에서 나를 기다려주었듯이.
그러니 천천히 와. 옌. 아주 천천히.
 
리우 옌:...
 
아르도어:⋯흰 장미 대신, 네 흰 머리카락이면 족하니까. ⋯ ⋯ ⋯사랑해.
 
리우 옌:... ...
... ... 응...
 
옌은 더듬더듬,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아르도어에게 전합니다.
 
새파랗게 질린 양 손은 드문드문 옷을 움켜쥐기도, 바르르 떨리기도 합니다.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듯, 그 얼굴은 어두워보입니다.
 
이내 고개를 들었을 땐, 양 뺨이 눈물에 젖어있습니다.
 
옌은 양손을 꽉 모아 쥔채, 천천히 고개를 듭니다.
 
눈이 마주 친 그 순간, 아르도어 앞에 선 그 사람은 잘게 떨리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올리며 웃어 보입니다.
 
리우 옌:... 미안해, ... 미안해, 알.
…네가… … 너무 보고싶었나봐….
그래서 결혼 전날에 말도 안 되는 짓까지 해버렸네. 여기 있을 나한테도 미안할 짓을 한거겠지...
... ... 걱정하지 마.
너를… 데려가는 짓 같은 건 안 할 거야.
네가 그걸 원치 않을 걸 알고 있어.
 
리우 옌:처음부터 알았어.
아는데도… 모른체하고 싶었어, 네가… 너만큼은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을거라고 믿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 ...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 …그러니까, 내 말은… 포기, …하겠다는 소리야.
 
아르도어:⋯ ⋯.
 
리우 옌:... 알, 미안해.
 
아르도어:⋯사과하지 마. 옌.
 
리우 옌:그리고… 결혼, 축하해.
내가 또 망쳐버렸네.
 
아르도어:⋯ ⋯ ⋯.
⋯망친 적 없어. 한 번도.
너라면 다 괜찮아.
사랑해. 옌.
⋯내 눈을 파내서라도 네게 주겠다고 한다면, 네가 싫어하겠지.
 
당신의 말에 옌은 고개를 작게 내젓습니다.
 
아르도어:⋯응.
 
맥없이 쓰게 웃음 지을 뿐입니다.
 
리우 옌:... ... 지금의 옌한테 잘 해줘.
 
아르도어:⋯응. 잘할게. 내 모든 걸 바쳐서라도.
 
리우 옌:또 널 상처주고 싶지 않으니까... ... ...응.
다행이다. 네가 날 미워하지 않아서.
 
옌은 그렇게 말하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빌어줍니다.
 
아르도어:⋯안 미워해.
옌. ⋯ ⋯ ⋯안녕.
 
리우 옌:... 응.
사랑해. ... ... 그래서, ...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
 
울음 맺힌 목소리가 참지 못하고 토해내듯 숨을 뱉어냅니다.
 
아르도어:⋯술은 많이 마시지 마. 담배도 끊어.
 
가장 원초적이자 희생적인 희망…… 지금의 옌에겐, 그것만이 전부입니다.
 
아르도어가 옌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결혼식 날, 맹세의 키스.
 
또한, 지금까지 아르도어가 사랑해온 모든 것들에 대한 이별을 고하는 인사가 될 거예요.
 
아르도어, 어떻게 하나요?
 
아르도어:⋯차는 항상 조심하고, 비 오는 날엔 우산 챙겨서 나가. 식사 거르지 말고, ⋯그리고.
널 많이 미워하지 마.
⋯내가 널, 사랑하니까. 힘들어도, 어려워도 그렇게 해줘.
⋯나는 네가 행복해지길 바라. (쪽. 뺨 위로 남기는 작별.)
 
리우 옌:응, ... 응. (앞선 모든 말에 바람 빠진 듯 힘없이 답했다. 이윽고 이어진 말에는,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응... 그럴게, 행복해질게... (바닥으로 눈물 몇 방울이 떨어졌다.)
 
맹세의 키스는 결혼하는 연인을 위한 것.
 
두 사람 사이에서는 오갈 수 없는 입맞춤입니다.
 
옌이 그것을 받아들였든, 받아들이지 못했든 아르도어는 옌에게 사랑을 담아 키스할 수 없습니다.
 
리우 옌:……밤이 늦었다, 얼른 자자.
내일은 중요한 날이잖아.
 
옌은 그렇게 말하며 눈물이 맺힌 채로 애써 웃는 표정을 유지합니다.
 
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아르도어의 결혼식이 시작됩니다.
 
옌은 맞이하지 못했던 그 아침이요.
 
아르도어의 앞으로 옌이 손을 내밉니다.
 
그 손은 잠시 허공을 떠돌다 아르도어의 팔을 붙잡습니다.
 
그러나 다른점이라면, 그저…… 잡았을 뿐이에요.
 
옌이 잡을 수 없는 것을.
 
리우 옌:……알.
날이 밝기 전까지 옆에 있어도 될까.
내가, … 그래도 될까.
 
아르도어:⋯응.
 
리우 옌:... 응... 고마워.
오늘 정말, ... 고마웠어. 아까도, 지금도, ... 내일도 고마울거야.
(제 손바닥으로 네 입술 감쌌다. 그 위에 조심스레 입맞췄다.)
좋아해, ... 영원히 애정해...
 
아르도어:사랑해. 영원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리우 옌:많이 보고싶을거야, ... 그리울 것 같아. 네... 온기가, 그 표정이, 목소리가, 말투가, 나를 부르는 이름이. ...
그 사랑한다는 말조차도, ... 영원히 그리워 하고야 말겠지.
... 많이 좋아했어, ... 앞으로도 좋아할게...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새카만 밤입니다.
 
그저 그믐달만이 저 멀리 어렴풋하게 떠있을 뿐입니다.
 
빗소리가 잦아들어갑니다.
 
조용한 밤이 지나갑니다.
 
...
 
...
 
...
 
아르도어는 자신의 핸드폰 벨 소리에 눈을 뜹니다.
 
아르도어:(간밤 사이. 잠결에 네게 건네었던, 작은 목소리. 옌. 내 소원은⋯ 네가 웃는 거야. 너는 어떤 대답을 했더라.)
(자리에서 일어나 옆을 본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 어디에도 옌은 없습니다.
 
단지 "미안해." 라는 답만을 남겨둔 채 떠난걸까요.
 
알, 전화가 오고 있습니다.
 
받지 않나요?
 
아르도어:⋯아르도어, 전화 받았습니다. (발신자를 확인하지 않고 받는다.)
 
울리는 전화를 받으면, 그 상대는 옌입니다.
 
옌은 조금 머쓱한 톤으로, 하지만 확실하게 말합니다.
 
리우 옌:알, 일어났어?
그, … 그게. 그냥…, 어제는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 화 났다면 미안해.
조금 있다가 식장에서 보자.
정말 사랑해.
 
아르도어:⋯괜찮아. 오늘도 사랑해.
이따가 봐.
 
그 말에, 옌은 늘 그랬듯 바보같이 웃음지으며 통화를 끊습니다.
 
그 옌도 저런 웃음을 지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아르도어는 방을 나와 거실로 갑니다.
 
옌의 짐 역시 남김없이 사라졌으나…….
 
단 하나, 상자만이 놓여있습니다.
 
아르도어가 풀어냈던 리본 역시 조금의 구겨짐도 없이 말끔하게 묶여있습니다.
 
아마도 이건 옌이 아르도어에게 준 선물인 것 같습니다.
 
아르도어:⋯.
(리본을 풀어내 상자를 열어본다.)
 
아르도어가 조심스럽게 리본을 풀고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부케가 거짓말처럼 아름답게 피어있습니다.
 
아르도어가 손을 대면 그것은 잘게 흩어져 허공으로 사라집니다.
 
부서진 파편은 은은하게 빛나는 눈송이가 되어 아르도어의 어깨에, 손에, 머리에 내려앉습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새하얀 눈들이 맑게 갠 아침 햇살을 받아 몇 번이고 반짝입니다.
 
5월, 봄의 결혼식에 걸맞은 눈부시게 순결한 광경입니다.
 
아르도어의 결혼전야는 지났습니다.
 
지금부터 맞이하는 것은 맑고 쾌청한 아침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축복을 받은 아르도어의 결혼식은 분명 아름다울 거예요.
 
그러니 슬퍼하지 말아요, 아르도어.
 
새신부에게 눈물 따윈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아르도어:('그래서,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남은 청자색 리본을 꾹 쥐었다.)
응. 행복해질게.
고마워, 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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